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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의 생애,
<삼국유사> 및 다른 저서
당시 불교계 상황 등을 중점 연구

편찬의 배경과 과정 국내 정치와 사회가 이렇게 불안한 가운데 무신정권은 최충헌에 의하여 어느 정도 안정기에 돌입했으나 이 때 고려사회는 국가적으로 가장 큰 환란(患亂)인 몽고족의 침입을 겪게 된다. 고종(高宗) 18년이래 계속된 몽고의 야만적인 침략과 지배로 인해 민중들은 몽고의 침략세력과 국내의 지배권력에 대한 싸움을 동시에 벌이는 이중의 항전을 전개해야 했으며 원종(元宗) 11년에 이루어진 몽고와의 강화(講和)와 개경천도(開京還都)는 무인정권의 종말과 몽고와의 전쟁 상태의 종결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원(元)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 뒤를 이어 고려에 강요된 일본정벌을 위한 경제적, 군사적 부담을 30여 년간의 항전(抗戰)과 몽고 지배로 인해 피폐할대로 피폐한 고려사회에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적 수난을 겪는 동안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민족 공동체로서의 집단의식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었고 현실적 수난을 민족의 자주적인 전통의식의 강조를 통해 극복해 보려는 역사의식 또한 고조되고 있었다.

이렇게 심화된 민족의식은 보다 지방적이며 보다 민중 속에서 성장해 온 신진사인(新進士人)층이나 신흥(新興)의 선승(禪僧)들에게서 더욱 구체적인 인식을 보이게 된다. 즉 지눌(知訥)로부터 혜심(慧諶) 등으로 이어지는 무신란(武臣亂) 이후의 조계종(曹溪宗)은 국난을 타개하려는 국민 의식 속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대의 신진사인(新進士人) 이규보(李奎報(목종毅宗 22 ? 고종高宗 28, 1168-1241)는 고구려 창국(創國)의 영웅 동명왕(東明王)의 사적(事迹)을 읊으면서 '천하로 하여금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도읍임을 알도록 하려함이라'고 그 동기를 밝히고 있기도 하였다. 이는 우리민족의 역사전통에 대한 강력한 주인의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곧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의한 민족의식의 전승에서 빚어진 산물이다. 그것은 단순한 전승에서가 아니라 몽고를 상대로 한 30년 민족의 대항전 속에서 더욱 발전적으로 심화되고, 마침내 뿌리칠 수 없게 된 이민족(異民族)의 압제(壓制)라는 현실의 제약 하에서 신흥(新興)의 조계종(曹溪宗)과 일체(一體)관계에 있던 선승(禪僧) 일연의 손을 빌어 민족의 역사에 관한 일대 서사시를 낳게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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